온식 이야기 (1)

우석영의 온식穩食 이야기 (1)

 

우리들 가운데 음식이 무언지 모르는 이는 없을 거예요. 아니, 난 음식이 무언지 모른다, 고 생각하거나 대답할 이는 없을 거예요. 먹고 마신 경험, 음식점에서, 행사장에서, 교회나 절에서, 카페에서, 집에서 보고 느낀 음식에 대한 기억. 이러한 자산이 없는 이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경험, 기억으로 우리는 음식을 안다고 말하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음식을 먹는지, 어떤 음식은 어떤 맛과 향이 나고 어디에 좋은지, 어떤 음식을 어떻게 요리하면 되는지, 어느 집에 가면 무엇이 맛있는지, 정도가 아닐까요?

우리는 너무나 자주 마시고 먹어요. 너무나 자주 마시고 먹어왔죠. 몇 시간만 지나면 우리는 또 먹잖아요. 알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먹었으니 안다고 생각하죠. 이 사물에 대해서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생활과 생각의 습관 탓일 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음식이 무언지, 우리는 아는 걸까요?

우선 음식이라는 단어부터. 우리는 이 단어를 알고 있을까요? 음식은 飮食이라는 한자어를 우리식의 발음기호로 표기한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 한자어가 무얼 뜻하는지 알고 있나요?

이 한자어를 보면 음 자에도, 식 자에도 같은 모양이 들어가 있지요? 食 말이에요. 이 모양은 어떤 뜻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랍니다. 어떤 뜻이었을까요?

이 뜻이 무엇이었느냐를 두고 지금도 학자들은 연구를 하고 서로 이러쿵저러쿵 주장하고 있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하지요. 食의 윗부분이 집을 뜻하고, 아랫부분이 곡식의 향기를 뜻한다. 그러니까 ‘집 안에 곡식의 향기가 솟아나고 있는 모습’을 이런 그림으로 그려놓았다는 거지요. 식食이란 밥 향기를 뜻하는 글자라는 주장이에요.

食. 정말로 집 안에서 밥 향기가 솔솔 피어나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여기서 ‘향기’와 관련된 부분은 좋을 양[량]良 자랍니다. ‘선량하다’는 말을 아나요? 이 선량하다는 말에도 들어가는 한자어이지요. ‘집 안에 좋은 향기가 난다, 무엇인가 좋은 것이 집에 있다’는 뜻이 飮食의 핵심 뜻이라는 주장입니다.

마시고 먹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요? 물론 놀 때 가장 좋지만, 마시고 먹을 때도 우리의 기분은 즐거워지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식도락食道樂’이니,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다’는 말도 그래서 있는 거겠죠.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너무 ‘자주’ 마시고 먹는 즐거움에 빠져들어요. 우리가 음식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별반 알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거예요. 너무 자주 마시고 먹다보니, 늘 가까이 대하다 보니, 우리는 식탁 위에 놓인 이 사물에 대해 깊이 탐구하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는 당연한 사물로 여기기 쉽죠. 탐구하기보다는 맛을 봐야 하고, 즐겨야 하니까요. 마시고 먹으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건 따로 있죠. 공부, 게임, 친구, 진로, 학원, 선생님, 엄마, 아빠….

여기에 사태를 더 나쁘게 하는 게 있습니다. 그건 먹는 일이 매우 중요한 선택 행위라는 사실이에요. 식사는 절대적 생존 활동이면서도 스타일의 표현이고 또 윤리적 실천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한번 좋은 것으로 선택한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습성이 있어요. 음식 선택과 같이 중차대한 선택을 한번 한 후에는, 그 선택행위가 좋고 바른 선택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다른 습관보다 음식을 먹는 습관만큼은 굉장히 바꾸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죠.

자, 정리해보죠. 음식을 잘 알고 마시고 먹는다고 생각한다. 마시고 먹었으니 안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마시고 먹으니, 음식이란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시고 먹으면서 생각할 거리도 너무 많아 죽을 지경인데, 음식을 깊이 생각한다는 건 무언가 불필요한 일만 같다. (마시고 먹을 때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싶다.) 설령 내가 불량식품을 선택했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좋아서 내가 선택한 거니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음식 문맹을 가능하게 하는 건 바로 이런 지독한 생각들입니다.

여러분! 음식은 결코 단순하거나 당연한 사물이 아니라는 것. 마시고 먹는다는 건 결코 단순히 신체 밖의 대상물을 신체 안으로 집어넣어 즐기고 소화시키고 흡수한다는 게 아니라는 것. 이것을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왜 음식은 단순하거나 당연한 사물이 아닐까요? 우선 음식은 내가 필요할 때면, 돈만 있으면 언제든 구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볼까요. 누군가 동물과 식물을 죽여서, 또는 그 일부를 동식물로부터 분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누군가 동식물을 음식(또는 식재료)의 형태로 만들고 그걸 또 제품의 형태로 (즉 식품으로) 만들어 마트나 식당에 옮겨놓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텅 빈 수퍼마켓을, 임시폐업이라는 문구를 만나게 될 겁니다. 생경하지요?

<대호>라는 영화를 보면 거기에 늑대에게 사람이 잡아먹히는 장면이 나와요. 사람은 살아 있는데, 늑대들이 질질 끌고 가서, 눈을 뜬 사람의 가슴살을 뜯어먹어요. 끔찍하죠? 그런데 이 이야기는 1930년대 이야기에요. 즉 20세기 이야기죠. 1930년대만 해도 범(호랑이)이 사람을 잡아먹고, 또 뱀에 물려 사람이 죽기도 했죠. 많은 사람들이 자기 먹을거리는 직접 생산해 먹었거나 포수들의 사냥에 의존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인류의 극히 일부만이 먹을거리를 만들어내고 있고, 이 먹을거리는 동식물로 생각되기보다는 제품으로 생각되고 말죠. 먹을 때, 동식물의 먹이그물 구조의 일부로서 먹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소비자가 되어 제품을 구매하여 소비한다고 생각해버리곤 말아요. 편의점에서, 마트에서 제품을 볼 때 우리는 이런 점을 좀 생각해봐야 해요. 그 제품은 어떤 동물, 어떤 식물의 죽음으로 가능했던가를요. 어떤 동물의 삶, 식물의 삶이 거기 담겨있는가를요.

음식은 단순한 사물, 당연한 사물이 아닙니다. 앞에서 생산에 이상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봤는데, 만약 동식물 생태계에 이상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먹는 것 중 1/3은 곤충을 매개로 수분(꽃가루 수정) 활동을 하는 작물이랍니다. 그런데 그 곤충 중 80%가 바로 꿀벌이죠. 만일 어떤 이유로 꿀벌 수가 갑자기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작물 수확량이 크게 줄어서 곡물 가격이 크게 오를 거예요.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은 적으니 가격이 올라가는 거죠.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 먹지 못할 수도 있어요. 꿀벌과 사회는 이렇게 이어져 있습니다.

꿀벌의 감소 정도가 아니라, 더 큰 이상이 토양생태계, 하천생태계, 기후환경에 생긴다면요? 그렇게 되면 지구에 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시달리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이것만이 아니죠. 우리 인간도 포함되어 있는 동식물의 먹이그물은 최초 생산자 집단인 녹엽식물의 광합성 활동이 아니면 모두 붕괴하고 마는데, 만일, 이건 정말 만일인데요, 만일 태양 에너지가 지구로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면, 아니면 갑자기 녹엽식물이 광합성을 중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 세계의 마트가 텅텅 비게 되어, 아마도 쌀 한 톨 얻으려고 총을 쓰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 거예요.

음식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첫번째는 그래서, 경이로운 태양의 기적이, 식물의 능력이, 생명의 협동이, 농사라는 위대한 노동이, 동식물의 희생이 밥 한 그릇에, 초콜릿 하나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에요. 아니, 담겨 있다고 하면 안돼요. 밥 한그릇, 초콜릿 하나는 바로 그 기적, 능력, 협동, 노동, 희생의 결합체이지요. (인디고잉 2016년 여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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