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진짜 패배자는 ‘유럽 좌파’ 임운택

  [기고] 브렉시트(Brexit) 남긴 교훈 : 금융 권력의 독재 / 임운택 (계명대 교수)

 

영국인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이 며칠째 전 지구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우선, 전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즉물적 반응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 국가 프로젝트를 넘어선 범유럽 차원의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이다. 브렉시트(Brexit)가 역사적으로 중차대한 정치적 사건인 한 이러한 정치적 사건의 배경과 교훈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영국인의 브렉시트 찬성의 직접적이고 피상적인 이유는 불평등 심화와 증가하는 난민 문제다. 요즘은 낡은 유물처럼 취급하곤 하지만 이러한 사회 문제는 지극히 계급적인 문제이고, 그러한 점에서 사회적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이다. 세대 간 투표의 차이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다소 로맨틱한 역사적 해석을 넘어 중산층 이하의 다수 노동자가 브렉시트에 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소 우회해서 그 지점에 다가가 보자.

유럽 통합은 제1차, 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소련을 포함한) 유럽과 북미 양쪽의 평화 정착을 위해 카를 도이치, 데이비드 미트라니, 에른스트 하스 등과 같이 유럽에서 영미로 망명한 일군의 학자들, 이들을 후원한 미국 대학의 국제 관계 연구소와 싱크 탱크, 미국 국무부, 윈스턴 처칠과 쿠덴호프-칼레르기 백작 등 유럽 내부의 정치가에 의해 백가쟁명으로 추동된 정치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유럽 연방 국가 프로젝트는 전후의 냉전 질서와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전후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번영 속에 슬그머니 사라졌다.

정치적 유럽 통합 프로젝트는 1970년대 세계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단일 시장 통합’ 프로젝트로 둔갑되었고,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화려하게 재등장하였다. 이러한 시장 통합의 주역은 금융 자본이었다. 이미 1980년대 영미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시대가 만개하면서 그 유명한 ‘체키니 보고서’가 강조하였듯 유럽의 금융 자본은 유럽 단일 시장이라는 보고(寶庫)를 놓칠 수가 없었다.

사법 및 경찰 공동 협력, 내부 시장, 공동의 외교 안보 정책이라는 소위 EU를 지탱하는 세 개의 층은 결국 시장의 기능을 최적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총성 없는 시장 전쟁을 이끌어가는 주력 부대는 유럽중앙은행과 각국의 중앙은행이었다. 시장의 행위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이들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내세워 탈정치성을 강조하면서 개별 국가의 재정 자율성을 현저하게 제약하였다.

재정 적자를 GDP 3% 이하로 유지해야만 하는 유로존 국가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사례에서 보듯 경제 주권을 침탈당하기에 이르렀다. 피에르 부르디외와 같은 진보적 지식인이 유럽중앙은행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한스 티트마이어 전 독일중앙은행 총재를 신자유주의의 주범으로 지목했던 것은 이러한 배경에 근거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부분적으로 양적 완화 정책을 폈음에도 기본적으로 유럽중앙은행의 시장 독재는 EU와 국제통화기금(IMF)과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면서 철저하게 금융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였다.

이러한 국면 전환의 이면에는 유럽의 시장화 모델이 역설적으로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 정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과 거대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아 추진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1970년대에 보수주의자로부터 ‘노조 국가’라는 푸념을 들을 만큼 유럽의 전후 자본주의 질서는 강력하게 조직화한 노조의 힘에 기대어 국가별로 독특한 복지 국가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유럽의 개별 국가에서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정쟁에서 패배하고 세계화라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기 위해 사민당, 녹색당 그리고 유럽의 거대 노조는 더 적극적으로 유럽이라는 사회적 공간으로 뛰쳐나가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려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반면,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유럽 보수 세력의 단일화에 대한 회의적 전망을 견지한 사민당 왼편에 있던 좌파 정당은 오랫동안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사민당과 거대 노조의 선택은 시장의 유럽화에 대항하여 ‘민주적’ 유럽을 지켜내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였으며, 그러한 점에서 위르겐 하버마스, 에티엔 발리바르와 같은 유럽의 지식인은 이러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하였다.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는 1997년 조인된 암스테르담 조약에 ‘사회 헌장’을 추가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더 이상의 커다란 진전은 없었다.

대부분의 시민 사회는 유럽 시장 통합의 위력을 조기에 인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20세기 중반 조직화한 노동자(노조)를 기반으로 자본주의 위기관리의 능력을 보여주었고 복지 국가의 구축에 기여했던 유럽의 사민주의자는 어느덧 가에타노 모스카가 지적했던 엘리트 ‘정치 계급’으로 전락하였으며, 소위 ‘제3의 길’을 주창하였던 신사민주의자는 2007년에 공식 합의된 리스본 조약을 통해 유럽 시장의 현대화라는 미명 아래 금융 시장화를 전면화하는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이번 영국의 국민 투표에서도 확인되었듯 가장 큰 변화의 조짐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아래서 급격히 진행되는 계급 구성의 변화이다. 유럽 전반에 걸쳐 반이민 전선에 앞장선 사람은 대부분 산업 사회의 시민적 규범에서 배제된 채 살아가는 ‘프레카리아트(불안정 노동자)’이다. 이들은 단기적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 시장화의 희생자로서 거대 노조의 통제(혹은 관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다.

비정규 일자리에 내몰리고, 사회적 안전망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지만, 정작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은 난민을 볼모로 잡아 무책임한 정치 공세를 펴는 포퓰리즘 극우 정당이나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매우 급진적인, 그러나 조직화된 노조의 기반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정당이다.

문제는 전면적 산업 구조 조정이 심화할수록, 금융 자본의 규율이 심화할수록 이러한 노동자 계층은 양적으로 점점 더 증가하지만, 사회적 갈등의 해법은 더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들은 노동의 헤게모니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브렉시트 이후 프렉시트(Frexit), 넥시트(Nexit)라는 말이 뒤이어 유행할 만큼 서구 사민당과 유럽의 거대 노조는 그동안 사회적 유럽의 전망을 유럽의 노동자에게 설득하는 작업을 소홀히 하였고, 성공하지도 못했다.

유럽 사민당과 노조가 오랫동안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였기에 이번 브렉시트 찬성의 결과는 단지 영국 노동당만의 책임이라고 보는 건 유럽 정세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 브렉시트는 그러한 점에서 자본주의 위기관리에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자본주의가 민주적 얼굴을 지니게 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던 (넓은 의미에서) 서유럽 사민주의와 조직화한 노동 운동의 잠정적 패배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상실한 유럽 사민당과 거대 노조의 문제는 이미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각종 선거에서 서유럽 사민주의 정당의 지속적인 정치적 패배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당장 국민 투표의 결과로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한 영국 노동당 당수인 제러미 코빈도 이러한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 문제는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해서 발생하지만 역사적 해법은 동일할 수 없다. 정치적 주체가 역사적 시기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 서유럽 복지 국가의 번영이 ‘갈등의 제도화’뿐만 아니라 정치적 주체로서 사민당과 거대 산업별(산별) 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화된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었다면 오늘날 ‘정상 자본주의(ordinary capitalism)’로 회귀하는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 문제의 해결은 과거보다 훨씬 이질적인 노동자 계층으로 구성된 프레카리아트를 정치적으로 조직해야 하는 난제와 마주하고 있다.

현존하는 자본주의는 생산 구조와 노동 시장의 다변화를 통해 사회 문화적으로, 심지어는 정치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이들의 연대를 방해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조직화된 노동의 정치적 동력을 현저하게 제한하였다는 점에서 노동의 프레카리아트화는 자본의 세계화 전략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EU 탈퇴에 따른 유럽 경제 질서의 붕괴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자본은 언제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해오는 데 일정한 학습 능력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물론 항상 성공적이진 않다!). 브렉시트의 진정한 위험은 사민당, 녹색당 등의 중도 좌파가 주도한 국제 연대의 실험으로서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더 급진적인 좌파의 브렉시트 찬성 의견도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자본은 이미 유럽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민주적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2016년 6월 4일자 <가디언>에 기고한 그리스 전 재무부 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영국의 EU탈퇴 반대 의견은 바로 그러한 딜레마를 반영하고 있다.(프레시안, 2016년 6월 28일자)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w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