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 아이히만, 대한민국, 서재정

닉슨, 아이히만, 대한민국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비극이, 그 비극적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속죄양을 제단에서 희생시키는 결말을 향해. 하지만 무속인을 희생양으로 바치려는 이 희한한 희생의례는 위선적 폭력이다.

워터게이트와 비교해보라. 정치비리를 뜻하는 ‘게이트’의 원조이기도 한 이 사건과 대한민국의 현실은 유사하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다르다.

워터게이트의 시작은 미미한 절도 사건이었다. 1972년 워터게이트 고급 아파트 단지에 있는 민주당 선거운동본부 절도범 5명을 경찰이 구속했다. 알고 보니 민주당 선거운동본부를 도청하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도청작전에는 전직 연방수사국 요원과 중앙정보국 요원들뿐만 아니라 닉슨의 재선 선거운동본부 고위간부들까지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69명이 기소되고, 이 중 48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닉슨 대통령 재임 중 이뤄진 수사이고 재판이었다.

대한민국은 어디쯤 있을까?

미 상원은 청문회를 열었다. 백악관 집무실에 녹음장치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콕스 특별검사는 닉슨이 임명한 사람이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녹음테이프 소환명령을 내렸다. 닉슨 대통령은 이 소환명령을 취소하라고 요구했으나 콕스 특검은 거부했다. 닉슨은 법무장관과 차관에게 콕스 특검을 해임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들은 대통령의 부당한 요구에 사임으로 답변했다. 급기야는 대법원이 개입했다. 대통령의 특권에 따라 테이프를 제출할 수 없다는 닉슨 대통령의 주장을 뒤엎고 테이프를 제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한민국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결국 닉슨 자신이 녹음한 테이프가 결정타였다. 백악관에서 진행된 은폐 음모와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도청에 백악관이 연루된 것을 감추기 위한 은폐공작에 닉슨 자신이 깊게 참여한 것이 밝혀졌다. 그러고도 ‘나는 관계가 없다’ ‘나는 모른다’고 거짓말한 것이 드러났다. 대통령이, 진실을 밝히려는 사법절차를 방해하고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자 모두가 등을 돌렸다. 하원이 탄핵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상원도 이를 승인할 것이 확실해졌다. 닉슨은 탄핵을 피하기 위해 사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은폐와 거짓말을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정의의 모델은 아니다. 닉슨의 책임은 사법절차 방해 및 위증으로 국한됐고, 후임 포드 대통령이 그를 사면하는 것으로 종결되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행정부 수반의 위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헌법적 기능이 행사되는 와중에 ‘국정 혼란’이라는 호들갑은 없었다.

이스라엘은 미국보다 훨씬 더 나갔다. 홀로코스트의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잡아다 법정에 세웠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에서 ‘악의 찌질함’을 봤다.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는 것이다. 반면 세자라니는 아이히만이 능동적 참여자였으며 ‘악의 구성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런 구분은 상관없다는 듯 이스라엘은 아이히만을 교수형으로 처단했다.

대한민국은 무수한 ‘아이히만’을 재판할 수 있을까? 처단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10·26은 되풀이됐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막장 드라마로. 그 막장 드라마는 바로 지제크가 말한 상징적 폭력이다. ‘헬조선’이라고 표현되는 폭력구조를 폭력으로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이히만’들은 그 막장 드라마 뒤에서 자신들의 폭력을 감춘다. 그 구조적 폭력이 드러났는데도 희생양을 제단에 올려놓고 푸닥거리하는 것으로 대충 막을 내린다면, 그것은 폭력이다.(한겨레신문. 2016.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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