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최초·최대의 애국과 박근혜 이후, 박명림

 

박근혜 최초·최대의 애국과 박근혜 이후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말을 잃은 국민을 무엇으로 달래고, 길을 잃은 나라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들불처럼 번지는 ‘대통령 하야!’의 아우성은 무엇 때문인가? 대한민국은 어쩌다 이토록 처참한 세기적 추문을 맞게 되었나? 뿌리는 하나 박근혜 대통령 때문이다.

그가 국가의 근본 중의 근본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법을 능멸하고 국격을 망가뜨렸다. 그는 헌법이 허용한 ‘공식 정부’ 외에 불법적인 ‘사설 정부’를 운영했다. 기괴한 사적 관계를 갖는 사인과 대통령이 함께 이끈 사설 정부는 국법과 공공기구 위에 군림하며 체계적으로 국가 조직을 파괴하고, 사적으로 국가 인사와 정책을 좌우하며, 천문학적 예산을 도둑질했다.

불법 사설 정부는 정부 예산, 공공 프로젝트, 개별 기업과 재단을 막론하고 국가의 모든 부문에 달라붙어 사익을 위해 국가 핵심 정보를 빼내고 예산을 갈취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교육과 문화, 체육과 재계, 기업과 관료, 청와대를 헤집으며 숱한 영역과 기구와 학교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공공윤리·기밀 체계·문서 보안·대통령 동선과 일정·경호 등 근본 체계와 규정은 무너졌다. 합법적 공적 정부 조직은 외려 불법적 사설 조직의 침투와 감시를 받았다.

대통령은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위중한 반(反)국가적·반(反)대한민국적 범죄 행태인가를 아는가? 만약 장관과 군인·공무원들이 그와 똑같이 국가 조직 밖에 사적 연줄을 두고 국가 업무를 계속 논의하고 수행했다면 대한민국은 벌써 망했다. 그는 장관과 수석은 안 만나도 괴기한 사인은 훨씬 자주 만났다.

대한민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헌 유린과 국가 능멸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방지, 또는 교정할 기회가 수차례 있었다. 이들을 모두 간과한 후과를 우리는 지금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첫째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과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였다. 현 대통령은, 그의 표현을 빌리면, ‘국기 문란’을 통해 대통령 직위에 오른 사람이다. 둘째는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의 결정과 행적에 대해 엄정한 헌법적·사법적 심사를 받았어야 했다. 셋째는 국정 마비를 반복한 대통령 의무 위반의 위헌 혐의였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출범 이후 2년 동안 무려 325곳의 고위 공직을 장장 3만1410일, 즉 86년의 해당 기간 동안 임명하지 않아 국정 집행을 심각히 방해했다. 넷째는 3권 분립과 의회 입법권을 부인한 위헌 행위 때였다. 대통령은 국회가 헌법에 따라 법률의 위임 범위를 넘는 대통령령을 발할 수 없도록 하려 하자 입법부의 원내대표를 축출했다.

문제의 심연은 ‘가산주의’에 있다. 2세, 3세 국가지도자들은 자신의 공적 지위를 세습받은 가산으로 여긴다. 따라서 사적 목표는 공공성을 압도하며 국민과 국법, 국가 조직과 예산을 사유물 다루듯 한다. 비극의 원천이었다. 애국·애민은 부친의 명예 회복이라는 애사(愛私)·애부(愛父)의 위장이었다. 그 사심은 결국 민주화 이후 최초의 대통령 축출 위기를 초래했다.

민주공화국 지도자는 본래 정치학·경제학·행정학의 분석 대상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심리학·정신병리학·신경학 영역의 분석도 필요하다. 사적 결정을 반복하는 전제정처럼 강박과 해체, 해태(懈怠)와 돌변, 조증과 울증의 반복은 주요 정책 결정에서 자주 드러났다. 전제정의 특징인 국가 정책의 발작적 급변은 공조직을 통한 공화국가에서는 흔치 않다. 공화주의의 기축 원리다. 그러나 사사주의와 가산주의의 결과는 실로 무섭다. 작게는 한 학생의 (불법) 입학을 위한 대학 입시 정책으로부터, 크게는 올림픽 행사,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위안부 합의, 국정교과서, (심야의) 수석 사표 지시, 총리 임명 등에 이르기까지 자기 부정의 정책 급변은 계속 반복된다.

대통령은 지금 ‘국민적 탄핵 상태’와 ‘법률적 지위 유지’라는 이중 상황이다. 하여 과제는 분명하다. 우선 그는 국정 개입을 중단하고 수사를 받아야 한다. 그로서는 최소 애국이다. 국정 파탄과 국가 표류를 방지하기 위한 자진 하야는 최대 애국이 될 것이다. 최대 애국을 권해드린다. 국민 탄핵을 당한 상태에서 현상 유지는 결코 안 된다.

국가를 위해 한국의 보수는 상당 기간 집권하면 안 된다. 민주화 이후 보수는 최초 10년 집권의 결과 국가를 환란의 나락에 빠뜨렸다. 두 번째 10년 집권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민생 파탄에다 국기 붕괴와 헌정 파괴까지 초래했다. 한국 보수의 실정과 악정은 당분간 치유 가능성이 없다. 집권하면 안 되는 이유다.

이제 국회와 국민은 난파된 민주공화국을 재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애국 국민들의 민의를 받들어 대한민국을 살려내야 할 민주 개혁 세력의 능력은 필수가 됐다. 최악의 대통령을 배출한 헌법과 헌정 질서에 대한 전면 개혁도 필수다. 조국의 비통한 현실을 바로 세워야 할 소명은 다시 국민에게 주어졌다. 대한민국을 이대로 침몰하게 버려 두어선 결코 안 된다. (중앙일보. 2016.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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