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의 부활은 광장에서, 박명림

 

민주공화국의 부활은 광장에서…사실상의 하야와 헌법적 하야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근혜 정부의 헌정유린과 국법파괴로 인한 누란의 민주공화국을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 애국국민들은 ‘나라 살리기’에 앞서 ‘나라 되찾기’를 먼저 외쳐야 한다. ‘국가 안의 사설국가’, ‘정부 안의 사설정부’를 수립하여 국헌을 능멸하고 국법질서를 농단한 불법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국민 품으로 되찾아오지 않는다면 나라 살리기는 요원하다. 나라를 살리기 위한 출발이 대통령 하야인 까닭이다. 국기문란에 관한 한 대통령은 현행범이자 확신범이며 반복범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국법질서의 근간인 공공성을 광범하고 철저하게 도륙하였다. 수직적 사설 정부조직은 대통령을 최정점으로 최하 실무부서에 이르기까지, 마치 빨대를 꽂듯 인사발령, 예산 규모, 사업 배정, 이익 편취, 개별 거래에 걸쳐 집요하게 국법을 파괴하며 거대 사익을 챙겨 국가를 결딴내고 있었다. 이런 유사 조폭집단에게 나라를 맡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언론보도와 국민항쟁을 통해 공화국이 완전 망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이들의 국가 도륙을 중단시킬 수 있게 된 것에 모골이 오싹하다.

헌정유린과 국법파괴도 중대범죄이지만 또 다른 핵심은 진실 폭로 이후 대통령의 반(反)국민적 대처다. 그는 감성적 호소, 진실 은폐, 변명, 국정장악 의지가 혼재된 사과를 두 번이나 하였으나 죄과의 내용은 조금도 밝히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거취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 의사에 정면으로 반하여 더 큰 국민항쟁을 촉발하는 요인이다. 세월호 침몰 때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은 학생들이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공화국 침몰 위기에서 국민들이 가만히 있는다면 이제는 국가가 죽는다.

공화국의 최후 골간인 공공성은 애초 군인과 음부를 뜻했다. 그것이 없다면 인간과 국가 생명은 죽기 때문이다. 공공성이 공화국의 최후 생명선인 까닭이다. 군인은 가장 춥고 먼 변방을 지키지만 그들이 무너지면 ‘나라’는 즉각 위험해진다. 음부는 우리 몸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이지만, 거기에 중대 질병이 돋으면 ‘온몸’이 아프고 끝내 생명 생산과 세계 지속이 불가능하다. 음부가 ‘핵’이라는 뜻을 갖는 연유다. 음부는 아무도 못보는 가장 사적인 곳이지만 가장 깨끗하지 않으면 공공성의 최고 표상인 세계도 멸망한다. 건강한 음부가 중요한 이유다.

국가의 핵인 권부도 마찬가지다. 권부가 썩으면 나라는 결코 유지되지 못한다. 권부는 군대처럼 희생적이고 음부처럼 청결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는 건강하며 지속될 수 있다. 그곳이 썩으면 국가는 죽는다. 지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대통령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지금의 국민항쟁이 나라 다시 살리기인 이유다. 지금 대한민국 권부는 악취로 코를 댈 수조차 없다. 국가가 살려면 깔끔히 도려내야 한다. 권부에서 악취가 진동하는데 국민과 군인과 공무원들에게 청렴하라고 할 수 있는가? 권부가 헌법을 파괴하고 국법을 능멸했는데 군인과 관료와 교사와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있는가? 말도 안된다.

공화국을 만든 근대 시민혁명의 중심표제는 “왕이 법이다”(The King is the Law)에서 “법이 왕이다”(The Law is the King)로의 전변이었다. 인치(人治)에서 법치로의 혁명은 전제와 공화, 사사성과 공공성을 가르는 제일 기준이었다. 법 위에 군림한 왕들은 처벌되고 처형되었다. 금번 사태는 대통령과 사설집단이 명백히 헌법과 법률 위에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법치 부정이었다. 수사·체포·투옥·재판·탄핵·추방(망명)을 포함해 혹독히 처벌받아야 한다.

문제는 국가 공조직조차 모두 죽인 것이다. 공적 지위와 임무가 아닌 대통령과의 사적 관계가 공적 결정의 기준이라면 국가는 이미 죽은 것이다. 그의 심통으로 인한 잦은 심술과 표적 보복이 두려워 국가 공공조직들이 자신들의 지위 유지를 위해 대통령 앞에 납작 엎드리자 애국과 애민은 실종되었다. 사적 면종복배와 치욕적 아부를 지속하지 않으면 대통령과 사설정부 앞에서는 정당·관료·국회의원·전문가·가족 누구도 공적으로 살아남지 못했다. 수시로 반복된 전제 혼군(昏君) 같은 발작과 축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비극의 뿌리였다.

국가비밀과 경호를 포함해 대통령은 국가안전의 체현이며 공공성의 표상이다. 하여 대한민국 국가 중핵의 보안과 경호는 제1선, 제2선, 제3선의 철통보안과 경호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겹겹 보안체제가 대통령과 연결된 특정 사인과 사설 범죄조직에게는 다 뚫렸다. 이게 과연 나라인가? 대통령은 자신의 사설정부 유지를 위해 국가의 공적 안전시스템을 무너뜨리고도 국가안보를 말하는가? 그 혼군의 사적 심기 보안과 사적 인간관계 경호를 위해 나라는 중심부터 벌벌 기고 썩고 무너지고 말았다.

따라서 국가의 핵심 정보인 대통령 주요 정책문서 및 연설들이 사전 사후에 사인에게 계속 유출되도록 방치한 보안기구들의 책임은 엄중하다. 공적 직임이 전혀 없는 사인이 청와대를 무시로 출입하고, 국가기밀과 주요 시책이 계속 새어나가도록 국가정보원, 민정수석실, 검찰, 수도방위사령부 대통령경호실 파견대, 경찰은 대체 무엇을 하였나? 그 기관들의 방조와 외면과 협력이 없었다면 이런 참담한 사태는 불가능했다. 다시는 이러한 국가 위험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엄중한 진상조사 및 처벌과 함께 이들 기관의 정치적 중립화를 제도화해야 한다.

영혼이 없는 관료와 여당 국회의원들은 공인의식은커녕 최소 시민의식조차 없었다. 이렇게 광범하게 국가예산을 불법도륙하는 동안 어디에서도 양심적 저지노력이나 법적 제지를 하지 않았다. 애국심과 전문성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모두 이 삼류 범죄집단의 하수인들이요 노예일 뿐이었다. 대통령과 범죄집단의 위헌적 불법 위세에 눌려 공화국이 불법천지로 치달아도 방임·추종하였다. 통탄지경이다. 정신은 죽고 껍데기만 남은 공화국, 이게 망국상황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망국지경인가? 망국이 따로 없는 처참한 나라 현실 앞에 통곡하게 된다.

현대 한국은 우리에게 일관된 반복역사를 보여준다. 4월혁명,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6월항쟁에도 불구하고 광장의 폭발과 열광은 패배와 낙담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즉 수동혁명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사태는 동일하였다. 광장의 정치와 선거정치, 시민정치와 제도정치의 확연한 괴리 때문이었다. 하여 이제 핵심 과제는 열광과 패배, 환호와 낙담의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고 선순환 고리로 만들어갈 국민적 지혜와 역량의 구축이다. 공화국의 재건을 위한 애국시민들의 과제는 국민항쟁 이후 ‘민간 신군부’나 ‘민간 노태우’의 등장을 저지하는 일이다.

과거 한국의 보수는 상당한 국가운영능력을 보여주며 빠른 산업화를 주도하였다. 이점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능력은 군부·미국·냉전이라는 요소가 존재할 때에 한정되었다. 반공보수·독재보수의 시기였다. 세 요소가 물러나자 민주주의 시대 한국보수의 국가운영능력은, 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부 사례에서 보듯 대실패였다. 한국보수가 민주보수로 변신하는 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반공보수로 돌아간 박근혜 정부의 국가운영은 언급불능 수준이다. 한국보수는 공화국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집권하면 안된다. 박근혜 개인과 친위세력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 뒤 보수가 국정문란 책임으로부터 빠져나올 데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필요한 이유다.

헌법이론에 비추어 정부의 ‘권력’과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주권’의 ‘비준권능’을 말한다. 단지 국민의사의 비준과 수행 자격을 뜻한다. 따라서 국민이 주권을 회수하면 권력과 권한은 존재할 수 없다. 현재 상황은 국민이 주권을 회수한 대통령에 대한 국민탄핵 상태이다. 국민적 탄핵에도 불구하고 다만 헌법적 탄핵절차를 밟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헌법적 탄핵은, 대통령과 보위세력의 저항으로 인해 국가를 끝 모를 혼란으로 끌고 갈 것이다. 대통령께 처음 애국하는 마음으로 하야하시라 권해드리는 간곡한 연유다. 그렇다면 ‘사실상의 하야’와 ‘헌법적 하야’는 차이가 없다. 국민들은 지금 헌법적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그게 민심이고 정답이다.

그렇다면 이제 하야냐 2선 후퇴냐의 논란을 넘어 광장의 민의를 국가로 수렴하기 위한 제도, 즉 공동거버넌스를 구축하자. 2단계 조치로서 ‘사실상의 하야’와 ‘헌법적 하야’의 결합이다.

먼저 연립내각이다. 연립내각은 과도내각이자 거국내각이며 중립내각이어야한다. 또한 비상내각이고 정상화내각이어야 한다. 국헌문란을 바로잡고 다음 대선을 준비할 이중과제를 지닌 내각을 말한다. 비정(秕政)조사와 정상화라는 내각의 성격상 총리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실정에 책임있는 인사들은 배제되어야 한다.과도내각의 최소 전제는 대통령 탈당과 국정개입 전면중단과 수사다. ‘사실상의 하야’다. 반면 국회와 국민은 재임 중 신변보장을 약속하자. 물론 정상화와 조기 대선이 끝나면 대통령은 퇴임하여 국법의 처리를 기다린다. ‘헌법적 하야’다. 국민들의 관용이 있어야 가능한 2단계 온건 접근조차 거부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대한민국의 자비는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는 국가와 헌법개혁을 위해 의회에 국회-시민 공동기구를 설치하는 것이다. 헌정개혁을 포함해 국가개혁의 근본 방향은 과도내각과 분리하여 이 독립공동기구에서 시간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국회 단독은 안된다. 광장을 제도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민사회의 대표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거버넌스가 바람직하다.

충격적인 미국 대선을 위요하여 오늘의 국제정세는 격변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로 단결해도 헤쳐 나가기 어려운 난국이다. 대통령발 국정파탄과 국민탄핵 사태를 종결하고 국정을 정비해야 할 화급한 이유다. 아직 대통령에게 마지막 애국의 시간은 남아있다. 최후 기회마저 외면한다면 국가와 국민의 더 이상의 관용을 기대해선 안 될 것이다.

나라는 더 공화적일수록 더 자유롭고 더 평등하다. 더 민주적일수록 더 평화롭다. 그리고 (나라가) 더 평화적이고 더 공화적일수록, (인간 삶은) 더 안정적이고 더 인간적이다. 프랑스혁명의 애국시민들이 가슴깊이 외쳤듯, “우리 어머니, 그건 공화국이네”(<레미제라블>). 그렇다. 인간은 존귀하고 시민은 존엄하며 공화국은 지엄하다. 어머니와,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의 삶을 위해 우린 민주공화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 광장은 국가로 연결되어야 한다. (한겨레신문, 2016.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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