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사람들-헤르만 셰어

 

지난 10월 20일, 대만 정부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차이잉원 총통 주도 하에 국가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골자는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을 정지한다는 것, 그리고 재생가능 에너지(이하 재생 에너지) 발전(發電)량을 현 4%에서 최대 20%까지 확대하겠다는 것. 약 43조원에 달하는 태양광 발전 투자계획도 아울러 공표되었다.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안 된 11월 1일, 한국 정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엄청난 정치 허리케인 속에서도 착실히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 황교안 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이 국무회의를 열고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법안을 의결한 것이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임시저장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것으로, 이로써 박근혜 정권은 경주에서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시설을 유치할 때 했던 약속을 저버렸다.

이렇듯 헌정 파탄이라는 현금의 정치만큼이나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참담한 수준이다. 신기한 것은, 눈을 이 ‘우물’ 밖으로 돌리기만 하면 ‘빛나는 신세계’에 정말 깜짝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2017년 6월,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리는 ‘엑스포 2017’의 주제는 ‘미래 에너지’로, 재생에너지 혁신 기술이 선보이는 세계박람회가 될 예정이다. 행사 마지막에는 미래의 합리적·경제적 에너지 활용을 위해 각 정부들을 인도할 가치·원칙 선언문이 채택될 전망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장기 침체, 보호무역주의의 위협, 악화되는 기후변화라는 역사의 먹구름 속에서도, 에너지 분야만큼은 지금 세계사는 진보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에너지 전문가이자 (2016)의 저자 크리스 구달(Chris Goodall)은 다들 이 진보의 속도를 너무 늦게 잡고 있다고 핀잔을 놓고 있다. 구달이 보기엔, 앞으로 10년 또는 길게는 20년 안에 태양광 에너지는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널리 사용될 것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정치 예언이 아니다. 그가 보기에 태양광 에너지 대중화는 시장 법칙의 필연적 귀결이다. 태양광 발전 기술의 진보로 인한 태양광 전기 가격의 급감(1킬로와트 당 미 달러화 기준 2센트 이하로 급감) 그리고 축전 장치인 리듐 이온 베터리 가격의 향후 10년 내 급감이 그 원동력이다. 즉, 제로 카본 발전량은 생산비 절감을 추구하며 고수익을 찾아가되 소비 성향을 살피는 자본의 생리상 점점 더, 훨씬 더 빠르게 증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장애물이 있다. 기존의 포클리어(Foclear, Fossil fuel+Nuclear) 에너지 생산으로 이익을 챙겨온 집단, 즉 석유기업, 원자력 파워블록의 정치 로비다. 화석연료 고갈은 픽션이며, 기후변화는 음모론이고, 원자력은 언제라도 안전하다는, 앙상하고 그래서 위험한 논리가 늘 이들의 무기로 동반 등장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정치에 있다. 아스타나의 선언문도, 크리스 구달의 예측도, 국회와 법원이라는 투쟁의 장을 거치지 않고는 무의미하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를 에너지 정치의 선경험국으로, 그리고 이 선경험의 선두에 있었던 한 인물로 이끌고 간다. 독일의 에너지벤데(Energiewende, 에너지 전환)를 이끌었던 인물인 ‘태양 교황’ 헤르만 셰어Hermann Scheer(1944-2010)가 바로 그 사람이다.

1944년생인 셰어는 전형적인 전후戰後 독일인으로, 8선 국회의원이다. 이렇게 보면 전형적인 정치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사실 정치가이기 이전에 경제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개심改心’한 학자였다. 한 때 원전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핵발전에 봉사했지만, 장년이 되어선 줄곧 탈핵·재생 에너지 운동에 매진했으니, 개심이란 말이 무색치 않다.

개심의 동력은 다름 아닌 정치였다. 사실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정치인이었다. 사회민주당(SPD)에 가입했을 때 그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기고 있었다. 원전 연구소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것도 36세에 독일연방의회(Bundestag, 하원) 의원이 되면서 새 직업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줄곧 국회의원으로 일하는데, 49세에 이르면 사회민주당 연방기획위(Bundesvorstand)의 위원이 된다.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작은 마을, 베르하임에서 태어난 평범한 시골 소년은 대도시에서 유학(하이델베르그와 베를린)했는데,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정치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걸었던 길 역시 연구자의 길이었다. 슈타트그라트 기술 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했고, 그 후엔 독일 원전 연구소에서 월급을 받았다. 또 2008년부터는 상하이 퉁지(동제) 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독일의 경제와 사회를 걱정하던 서른 즈음의 젊은 교수를 에너지라는 화두로 몰고 간 사건이 터진다. 1973년 석유수출국기구의 석유수출금지 선언이었다. 그는 이 세계사적 사건에 충격을 받고 석유, 원자력 등의 문제가 향후 독일 경제에 취약점이 될 것임을 간파하게 된다.

그러나 확연한 개심의 시점은, 1980년대의 어느 시점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바로 태양이었다. 지구에 필요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빛 에너지를 보내오는 태양이야말로 진정한 에너지원이며 미래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에 눈을 뜬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에너지가 실은 ‘우리 존재의 수원’(리처드 하인버그)이라는 진리를 깨쳤는지도 모른다. 또 경제학자인 그가 보기에, 재생에너지 산업이야말로 포클리어 에너지 식민지화로부터 저개발국가들을 해방시켜줄 해방의 매체였다.

헤르만 셰어. 그는 누구인가? 그를 ‘태양 교황’이라는 영광스러운 닉네임으로까지 승격했던 건, 그의 압도적 추진력이었다. 추진의 두 바퀴는 선명한 인식 그리고 앞선 행동이었다. 선명한 인식은 책으로 상재되어 나왔고, 앞선 행동은 조직 설립과 입법, 양자로 분출되었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절묘한 결합이 아니고 무엇인가.

1987년 , 1989년 를 발표하며 셰어는 재생에너지만으로도 포클리어 에너지를 100% 대체할 수 있고,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혁명적 주장에 나섰다. 독일이 에너지벤데를 법제화한 것이 2010년이고 탈핵을 선언한 것이 2011년이니, 20년을 앞서간 것이다. 아니 셰어와 동료들의 20년 전진의 결실이 에너지벤데였고 탈핵이었다. 후속작 <태양광 전략>(1993)과 <태양광 경제>(1999)에서 셰어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우리를 산업 문명을 대체하는 ‘태양 정보 사회’로 옮겨줄 것이라 단언했다.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외침이었다. 하지만 1988년, 비영리조직인 ‘재생에너지 유럽연합’(EUROSOLAR)을 창립하고 활동하면서 그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더욱이 셰어는 국회의원 직을 겸직하고 있었기에, 그의 정력적 단체 활동과 국제회의에서의 성과는 자연스레 법제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가 입법한 여러 에너지 관련 법안은 실제로 독일 국가재생에너지법(Erneuerbare-Energien-Gesetz, EEG, 2000년 제정)과 유럽 연합의 재생에너지 법체제의 골격을 세우는 데 결정적 공헌자였다. 1990년 독일 정부가 시행한 ‘100,000 태양광 지붕’ 프로그램의 기획자는 바로 그였다. 1999년 새로운 에너지 가격 체제인 ‘피드-인-타리프(Feed-in-Tariff)’ 법안을 발의한(2000년부터 시행) 사람도 바로 셰어였다. 심지어 이 법은 ‘셰어 법’이라고도 불린다. 이 법으로 모든 재생에너지가 국가 전력송신망에 수용되었고,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업과 개인은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게 되었다.

태양광 시대라는 미래를 확신했고, 그 미래, 즉 극복된 상상 현실에 매료되었던 그는 ‘그 현실’을 쫓아 쉼 없이 전진했다. 2001년 재생에너지 세계위원회(WCRE)를, 2004년엔 국제 재생에너지 에이전시(IRENA)를 창립하여 목소리가 가 닿는 곳을 넓혀 갔다.

그러나 시대를 너무 빨리 산 선각자들의 운명인 고독과 역경은, 독일의 국회의원이라 해서 빗겨가지는 않았다. 핵발전소를 없애도 되는 것일까? 값싼, 그리고 상대적으로 청정한 에너지원을 포기해도 우리가 안전한 걸까? 재생 에너지가 일부 채워줄 순 있겠지만, 100% 대체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될까? 지금도 이 땅의 많은 이들의 것일 이러한 의심은, 사회민주당 안과 밖 할 것 없이 셰어를 옥죄었다. 2008년, 그가 발표한 에너지 정책 계획은 사회민주당 내에서도 외면당했다. 위르겐 발터, 볼프캉 클레멘트 같은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은 그를 비판했다. 핵발전소가 결국 재생 에너지로 가는 먼 여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 했던 앙겔라 메르켈 현 독일 수상 역시 그의 이상 실현을 가로막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전진은, 퇴보 속의 전진이었던 것이다. 모든 역사의 전진이 그러하듯이.

2010년, 독일의 탈핵 선언을 미처 듣지 못하고, 갑작스레 숨을 거두었을 때 그의 곁에는 <에너지 명령>이라는 제목의 미출간 원고가 있었다. 부제는 ‘지금 바로 100%’였다.(<한겨레21> 1139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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