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식 이야기 (3) 온식? 따뜻한 밥인가요?

 

잘 아시겠지만, 충청남도에는 홍동 마을이라는 특이한 마을이 있지요. 어린이집, 학교, 도서관, 책방, 목공실, 생협, 신협, 원예조합, 지역센터, 목장과 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얼마 전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풀무농업기술학교(풀무학교 고등부) 교장 선생님인 홍순명 선생님도 뵙고 왔답니다. 선생님을 뵐 때, 마침 제가 이 ‘온식 이야기’가 실린 <인디고잉>을 가지고 있어, 선생님께 드렸더니 대번에 이러십니다. “온식이 무업니까?” 마침 제 옆에 서 있던 게시판에 ‘대안 음식’이라는 말이 있길래, “바로 이런 거”라고 대강 대답을 하고는 말았습니다.

 

그런데 질문이라는 것은 희한한 효과가 있어요. 언제나 답변보다 질문이 더 위대한데, 질문을 잘 하면, 생각의 지평이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질문으로 생각이 차원 이동되고, 그래서 새로운 생각과 학문이 나옵니다. 또 위대한 학문의 결실은 언제나 그 결실을 새로운 질문과 함께 후손에 전달합니다. 철학자란 잘 제기되지 않는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죠. 홍순명 선생님이 하셨던 저 질문은 오래 제 마음에 남더니 이내 제 질문이 되더군요.

 

온식이란 무엇입니까? ‘온식’이라는 말은 보통 쓰이는 말이 아니죠. ‘온전식(穩全食)’이라는 말을 제가 줄여서 쓰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온식, 온전식, 이런 말을 쓰자고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전식이란 무엇일까요? 한자어 뜻 그대로 하면, 평온하고(穩) 결함이 없는(全) 식사입니다. 하지만 평온하고 결함 없는 식사란 어떤 식사일까요? 풀무학교를 다녀온 뒤로, 저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얻었습니다.

 

첫째, 어떤 식(食)이 온전식이 되려면 식 행위의 대상에 대한 온전한 앎이 있어야 합니다. 즉, 그것의 물리적 실체를 온전히 알아야 온전식입니다. 그걸 잘 모르고 먹으면 제아무리 SOL(Seasonal, Organic, Local) 푸드만 골라 먹어도 온전식은 못 됩니다.

 

그런데 식 행위의 대상이 되는 사물의 물리적 실체를 안다는 것은, 그 사물이 어디에서 자랐고 누가 생산했고, 어떤 환경비용을 지출하며 집까지 이동하게 되었는지 따위를 안다는 것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이 쌀이 경기도 이천에서 어느 농부가 생산한 쌀이고, 유기농으로 재배했고, 어느 생활협동조합 네트워크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알았다 해도, 쌀이라는 사물의 물리적 실체를 아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쌀 한 톨의 물리적 실체는 무엇인가요? 잘 아시겠지만, 쌀 한 톨이 나오려면 여러 복합적인 생태과정이 작용해야 해요. 첫째, 지구보다 훨씬 뜨거운 태양이 지구에 빛을 보내오는 과정입니다. 둘째, 공기 중 이산화탄소가 적정한 비율로 충분히 있어야 해요. 셋째, 전 지구적 물순환이라는 생태과정입니다. (이 요건들이 갖추어지면 녹엽 식물의 세포 안에서 광합성이라는 위대한 활동이 가능해져서, 이 세상 모든 먹이의 원천인 당이 만들어집니다.) 넷째, 벼의 뿌리와 붙어 있는 흙의 풍부한 미생물 활동입니다. 이것이면 충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름에 피는 벼꽃에서 암수생식이 일어나지 않으면 쌀알은 벼에서 맺히지 못해요. 그런데 벼의 경우 생식을 돕는 녀석은 곤충이 아니라 바람입니다. 즉, 대기의 흐름이 없다면, 우리는 밥을 전혀 먹지 못하게 돼요. 이 다섯 가지 생태과정, 그리고 여기에 이 생태과정이 벼라는 작물에게서 잘 작용하도록 관리해주는 관리자의 활동이 더해져야 비로소 쌀 한 톨이 나옵니다. 이 관리자를 우리는 농민이라고 부르고, 관리자의 활동을 농사라고 부릅니다.

 

쌀 한 톨이, 세상에 나오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거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과 지구의 관계, 대기 환경 내 탄소, 대기의 흐름, 물의 순환, 미생물의 활동, 이것들을 기반으로 한 엽록체의 위대한 활동과 농민의 피땀 어린 노동, 이 모든 것이 한 데 얼려 나온, 보석 같은 생명의 결정체가 바로 쌀 한 톨입니다.

 

2016년 소매상에서 거래된 쌀 20kg 가격이 4만원이라고 합니다. 1만원이면 5kg을, 5천원이면 2.5kg의 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커피 한 잔 안마시면, 2.5kg이나 되는 쌀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밥 한 공기에 90g의 쌀이 들어가니, 2.5kg의 쌀로 한 사람은 약 30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요. 하루에 밥 세 번을 먹는다고 하면, 10일치 밥이 커피 한 잔 값으로 해결됩니다. 이렇게 적게 지불하고, 쌀을 사 먹어도 되는 걸까요? 앞서 본 복합적 생태과정의 총합에, 농민의 농생태계 관리 활동에, 이렇게 적은 비용만 지급해도 우리가 도덕적으로 당당할 수 있을까요?

 

둘째, 손수 길러 먹고 조리해 먹어야 온전식입니다. 길러 먹는 게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일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땅이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도시인도 옥상에서, 마을의 공지에서, 또는 외곽의 땅을 임대받아 텃밭 농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100년 전만 해도 대개 농민이었죠. 우리 모두에게는 농민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먹는다는 것은 곧 농생태계의 생태과정과 생태계 관리 활동에 접속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먹는 한, 우리는 누구라도 농(農)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손수 길러서 먹는 게 어렵다 해도, 손수 요리해서 먹는 건 쉽지 않나요? 요리라고 불리는 자연문화활동을 하면, 후루룩 ‘흡입’하지 못하게 됩니다. 썰고 끓이고 데치고 삼고 구우며 생명을 직접 대하다 보면, 밥상 위에 올라오는 생명에 대해 생각할 계기가 알게 모르게 마련되는 것이죠.

 

셋째, 앞서 SOL 푸드를 이야기했는데, SOL 푸드가 온전식입니다. 그런데 첨언해야 할 게 있어요. SOL로는 사실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SOLFAN이 되어야 온전식입니다. SOLFAN이라는 요건을 갖춘 먹거리(먹이)를 사 먹거나 또는 SOLFAN의 방식으로 길러서 먹으면 그게 온전식입니다.

 

SOLFAN은 무엇의 약자일까요? Seasonal, Organic, Local, Farmer-friendly, Animal-Friendly, No-Nuclear Radiation 입니다. 제철, 유기농, 지역산이라도 그것이 곧 농민·농업노동자에게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지를 보장하는 지표는 아닙니다. 즉, F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SOLF라는 요건을 만족한다는 것이 곧 취급되는 동물을 사려 깊이 취급한다는 것도 아니죠. 예컨대, 소에게 유기농 사료를 먹인다 해도 소가 신체 활동을 충분히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자라다 죽임을 당한 소의 살점은 온전식의 대상은 아닙니다. 즉, A가 추가되어야 마땅해요. 마지막으로 추가된 N은 원전 방사능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물론 유기농은 방사능으로부터의 안전을 포함하는 가치이지만, 유기농을 고집하는 농민의 논밭 작물도 방사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각별히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페이지를 덮고, 동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 가보면, 지금 제가 한 말들이 모두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어요. 11월 11일이면 ‘빼빼로 데이’라 해서 빼빼로라는 것을 먹던데, 빼빼로는 무엇인가요? 미국산·캐나다 산 밀가루에다 (그 역시 재료는 수입하는) 백설탕을 넣고, 가나 산 코코아빈을 넣은 다음, 거기에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온 식물성 기름을 넣습니다. 이 혼합물에 가공버터, 전란액, 유당, 코코아를 넣은 후, 산도조절제, 맥아액기스, 정제소금, 액상과당을 집어넣으면 나오는 물건이 있죠. 거기에 합성착향료, 유화제, 효소제, 효모를 넣은 것이 바로 빼빼로라 불리는 괴물입니다. 이것은 과연 먹을 만한 것인가요? 이렇게까지 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롯데식품의 누군가는 왜 이런 식의 합성을 생각하게 된 걸까요?

 

여러분, 제가 SOLFAN을 말하면, 많은 이들은 한국의 현실에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비현실적인 걸까요? 제가 1970년대에 전라도 시골에서 먹었던 것은 전부(일부가 아닙니다) SOLFAN 푸드였어요. 저, 빼빼로야말로 비현실, 초현실이 아닐까요? SOLFAN은 지금도 가능합니다. 한살림 같은, SOLFAN의 가치에 동의하는 협동조합을 통하면 가능해요. 한살림의 모든 품목이 SOLFAN을 충족하는 건 아니지만, 대개의 품목은 SOLFAN을 충족하고 있죠.

 

정리해볼게요. 밥상 위에 올려놓는 먹거리(먹이)의 물리적 실체를 온전히 알아야 하며, 그것을 손수 길렀거나 또는 적어도 손수 요리해야 온전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SOLFAN의 방식으로 길러진 것이어야 합니다.

 

너무 가혹한 기준일까요?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되야 비로소 온전식입니다. 식 행위의 대상인 그 사물이, 생명의 제물(祭物)임을 알고 또 생각하며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테이크 햄버거에는 소의 죽음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소는 왜 죽은 걸까요? 햄버거를 먹는 여러분의 즐거움을 위해서 기꺼이 죽은 걸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소는 스테이크를 팔고 또 사는 이의 이익을 위해 희생당한 것입니다.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서 고귀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이를 바치는 행위를 우리는 제사(祭祀)라 불렀습니다. 햄버거를 위해 희생된 소는 희생양이 아니던가요? 여러분, 소를 먹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먹으면, 한번 죽은 소를 두 번 죽이는 몹쓸 행동이 됩니다. 소를 희생양으로 생각하고, 왜 ‘내게’ 그런 희생양이 필요했는지 생각하며 하는 식사는 곧 제사 행위입니다. 여러분, 모든 밥은 메밥(제삿밥)이에요. 지금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겠지만, 이 말을 꼭 기억해두세요. 그러면 나중에 이 말이 찾아올 날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알고 돌아서야, 생각해서 돌아서야, 폭력식(暴力食), 악식(惡食)으로부터 해방되어 비로소 즐거운 식사가 가능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온식(穩食)만이 낙식(樂食)입니다. 지금 한국은 시민 혁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거듭나 즐겁게 살려면’ 식탁 혁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디고잉 53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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