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철균-영웅 무협지의 종말, 강영희

 

격세지감이라 했던가. 류철균을 만나 ‘나는 박정희의 어용학자이고 싶다’(<사회평론 길>, 1997)라는 제목으로 나간 인터뷰를 한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류철균은 ‘인간 쓰레기’ 같은 ‘지식인 사회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토로하고 ‘국가라는 것을 자기 사상의 중심에 놓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랑 인텔리겐치아’를 선망하면서, 나치 당원이 된 하이데거에게 동조하고 박정희에 의해 ‘의문사’ 당한 장준하를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3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문화융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시한다. 대통령은 최순실의 도움을 받아 취임사를 작성한 것으로 밝혀진다.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류철균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자리에 오른다. 대통령은 창조적 문화콘텐츠는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도 최순실의 추천으로 같은 위원회 위원 자리에 오른다. 류철균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학점 특혜를 준 혐의로 구속된다.

 

류철균과 관련하여 나를 사로잡는 느낌은 외모의 평범성이다. 박정희에 대한 용비어천가 <인간의 길> 첫 장에서 그가 (박정희를 모델로 한 주인공) 허정훈의 아버지 허선영을 중국 고대의 현군 우임금에 비유했을 때, 욕먹으며 되레 유명해지고 싶은데 왜 이문열은 욕하면서 나는 욕하지 않냐고 볼멘소리를 했을 때,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어야 했다. 한마디로 그의 목표는 평범함을 벗어나 비범한 존재가 되는 것, 요컨대 ‘센 놈’이 되는 것이었다.

 

류철균의 레이더망에 잡힌 ‘센 놈’의 역할 모델로 박정희만한 인간이 있을까. ‘센 놈’이 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박정희, 그 결과 대한민국을 ‘센 나라’의 대열에 올려놓았으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류철균은 말했지만, 윤리고 도덕이고 사회정의고 안중에 없던 박정희의 ‘센 놈’ 취향이 박근혜 대에 와서 나라 전체를 ‘센 놈’ 취향으로 도배한 것은 최근의 사태에서 통감하는 바가 아닌가. 마침내 참다못해 국민 다수가 들고일어났고, 와중에 ‘센 놈’으로 입신양명한 류철균 역시 수갑을 찼다.

 

류철균이 수업 시간에 했다는 말. ‘세상은 돈과 권력과 섹스로 돌아가는 겁니다. 설마 아가페적인 사랑을 믿는 건 아니죠? 사랑, 믿음 같은 건 아무 힘이 없어요.’ 만약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도 마침내 박근혜나 류철균 같은 부류가 될 것이다.

 

류철균은 여전히 반대편에 버티고 서서 당돌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어차피 인생은 탕진하는 거죠. 자기 생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겁니다.’ 하지만 류철균은 결코 인생을 탕진하지 않았다.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다. 인생을 탕진한다는 그의 말은 진심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탕진을 현실이 아닌 비현실의 언어로 사용한다. 비현실? 그렇다, 가상현실이다!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회장인 류철균은 <스토리텔링 진화론> <게임사전>을 펴낸 류철균표 문화콘텐츠의 리더다. 오늘날 수많은 이들을 사로잡는 가상공간을 류철균은 ‘탕진’이라는 언어로 규정한다.

 

나는 가상공간이 새롭게 확장된 현실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곳이 욕망으로 도배된 류철균식 탕진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 공간의 배후에는 박근혜, 최순실, 차은택의 농단이 있으며, 그 농단은 세월호 아이들의 피눈물 나는 아우성을 배후 조종한 문제의 핵심이다.

 

유턴할 때가 되었다. 탕진의 캐치프레이즈를 높이 세운 류철균식 스토리텔링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때가 되었다. 그것은 영웅 서사를 본색으로 하는 무협지 또는 육전소설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한겨레신문, 2017.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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