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습격, 서해성

 

밥쇼가 이 땅을 강습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배부른 식욕을 통해 자기 포만감을 확인하고 새로운 식욕을 향한 탐식을 감행하는 중이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진 사회적 위장을 채워주고 또 여전히 비어 있다는 걸 검인해주고 있는 건 쿡방, 먹방이다. 바야흐로 한국인은 티브이에 침을 발라 핥고 때로 통째로 씹어먹고 있다. 티브이 지시에 따라 식단이 바뀌고, 청소년 장래 희망이 요리사 주방장이 아니라 셰프가 되고, 대중들은 주말이면 밥을 찾아 떠돌고 있다. 맛집 기행. 어떤 경로든 한국인의 여로 끝에는 여지없이 밥집이 있다. 가히 배부른 걸식여행이다.

 

밥 한 그릇 세상이라는 말에서 보듯 밥은 생존이자 문화, 사상이고 이데올로기다. 이팝이라는 낱말 자체가 정도전이 고려 토지제도 해체를 성사시킨 뒤 이씨 체제 아래서 비로소 먹게 된 쌀밥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도 마찬가지다. 이팝에 고깃국은 봉건농본사회에서 태평성대의 구체이자 기름기 흐르는 수사였고, 식욕에 관한 이상적 표현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불거졌던 광화문 광장 토론은 역사상 가장 큰 식탁이었다. 음식문제로 이토록 다퉈본 적도 없고 밥 내용을 권력에게 바꿔달라고 요청한 적도 일찍이 없었다. 요컨대 정치 없이 밥 한 그릇을 온전히 말하기도 먹기도 어렵다.

 

눈으로 먹는 밥이 미디어 권력으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밥 프로그램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투어 중산층적 식탐을 강요해온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방송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다지만 위산은 각인마다 분비된다는 점에서 이 전파의 특성은 다분히 개별적이다. 이들은 시장화된 밥인 외식을 통해서 소비자의 계층적 지위를 일상적으로 호출하고 있다. 취향으로 전도시켜낸 식욕 소비구조를 매개로 대중의 불안정한 사회적 위치를 밥쇼가 위안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이어트와 나란히 ‘먹거나 안 먹거나’로 신분 기호화한 채 21세기 한국 사회를 동행하고 있다.

 

이 거대한 탐식문화는 나눠먹는 밥, 대중공양, 다중건강식보다는 나의 밥상이다. 밥쇼는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는 학교나 사병 식단, 노숙자 센터, 교도소 등 진짜 밥상이 필요한 영역에는 숟가락을 놓지 않고 있다. 밥맛이 삶과 세상을 살찌울 수 있는 곳에 맛있는 권력은 정작 부재한 것이다. 대신에 근래 밥 권력은 집밥을 부지런히 교육시키고 있다. 가정 식단마저 시장논리에 본격 포섭되고 있는 것이다.

 

밥쇼의 변두리에는 또 다른 밥쇼가 있다. 인터넷 먹방이다. 음식구경꾼으로 전락한 옥탑방·고시텔·원룸으로 파편화된 개인들은 먹방이라 부르는 폭식 프로그램 진행자를 식구로 마주한 채 야식을 먹고 있다. 음식을 꾸역꾸역 짐짓 맛있게 위장 속으로 쑤셔넣는 진행자를 보면서 청년들의 식욕은 딱한 대리 위안을 얻고 있다. 노량진 수험생들의 끼니에서 비롯된 컵밥 시대의 이 밥쇼는 디지털 외곽에서 사회심리적 보릿고개를 슬프게 넘고 있는 중이다.

 

 

결국 주말이면 한국인은 맛집으로 몰려간다. 할 수 있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별반 없는 문화한국과 교양 없는 교육의 일대 승리가 낳은 현상이라는 점 또한 뺄 수 없다. 오늘날 쿡방, 먹방은 1980년대 3S(섹스, 스크린, 스포츠)가 질적 전회를 했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허기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복, 미래의 위기에 대한 공포를 대체하는 데 쿡방, 먹방만한 것을 찾기는 거의 어렵다. 한국인은 위장 말고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게 달리 없다는 뜻이다. 대중 감시를 기초로 하는 테러방지법 시대에 한국인의 식욕은 어떤 형태로 팽창할 것인가. 행여라도 유신 시대의 맛을 닮아간다면 혀의 독재 시대를 면치 못할 것이다.(한겨레신문, 2016.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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