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사람들-헨리 솔트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6차에서 10차에 이르는 촛불집회가 열린 뜨거웠던 2016년 12월. 나라 한편에서는 무려 2500만 마리가 넘는(12월 24일 0시 기준) 닭, 오리 등 가금류들이 이른바 ‘살처분’되는 싸늘한 대량학살이 진행되었다. 그야말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신속하고도 단호한 ‘처분’이었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에 감염되었거나 감염될 염려로 강제 도살된 이들 가운데 약 80%는, 닭이라고 한다.

 

갈루스 갈루스 도메스티쿠스(Gallus gallus domesticus)라는 학명으로 불리며, ‘붉은 들닭’에서 기원된 아종. 한 때 들에서 살았으나 약 1만 년 전에 가축이 된 이들. 이들은 과연 그토록 쉽게 도살되어도 되는 존재들일까? 육계는 부화해서 도살되기까지 약 30일을, 산란계는 약 1년을 살게 한다는데, 쾌적한 환경에서라면 8년에서 15년까지 생존할 이들의 삶을 이토록 단축시킬 권한이, 과연 인간에게 있기는 있는 걸까? 닭은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쓰고 불필요할 시 ‘처분’하면 그만인, 인간의 소유물일 뿐인가? 만일 “인간이 과거에는 동물과 같았으나 구원의 주문을 발견하여”(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인간이 될 수 있었다면, 그리하여 우리가 닭보다 조금이라도 더 우월한 존재라면, 우리는 도덕적 사유와 행동으로 그 우월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이러한 사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이 세계에 진지한 인간이 되는 걸 포기하는 것”(도나 해러웨이)과도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이는 단순히 철새의 문제만도, 뚫린 방역시스템이나 공장식 밀집사육의 문제만도 아니다. 철학자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는 가축의 대량 살처분 행위를, 가축을 오직 식품·약품의 원자재로만 환원하여 생각하는 ‘생산제일주의 문명’이 낳은 치명적 결과라고 진단한다. 달리 말해서, 현재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축을 생각하고 취급하는, 다른 문명적 태도와 행위가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퐁트네에 따르면, 가축과 인간,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라는 이 주제의 경우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윤리학보다 앵글로색슨 윤리학이 훨씬 앞서나갔다. 실제로 1975년 <동물 해방>을 출간하며 공장식 축산업을 비판해온 피터 싱어는, 일찍이 18세기 말 동물의 권리를 이야기한 제레미 벤담(1747~1832)의 논의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당시 영국에서 벤담이 구우일모(九牛一毛)였던 건 아니었다. 이미 1770년대부터 험프리 프리맷, 토마스 테일러, 존 오스왈드 등 적지 않은 이들이 벤담과 더불어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적·철학적 쇄신의 전통은 마침내 1822년 리차드 마틴이 제안한 ‘소를 잘못 대하는 일에 관한 법안’(일명 마틴 법안)이 가결되면서 입법 운동으로까지 번지며 무시할 수 없는 운동이 된다.

 

헨리 솔트(Henry Stephens Salt, 1851~1939)의 <동물의 권리>(1894)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말까지 이어져 온, 선배들의 이러한 길고 긴 투쟁의 여정에서 피어난, 피지 않으면 안 되었던 꽃이었다. 헨리 솔트라고? 솔트는 누구이며, <동물의 권리>는 어떤 책인가?

 

솔트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찰스 다윈 풍이었다. 스콧 니어링 풍이라 해도 좋은데, 은거지에 틀어박혀 글과 책으로 당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런 유거의 삶을 추구했던 건 아니다. 이튼 칼리지와 케임브리지 대학을 무난히 졸업하고, 졸업 후 곧바로 이튼 칼리지 교사로 활동한 이력을 살펴보면, 되레 그는 평범한 수재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 범상한 청년을 급진적 사회운동과 사회적 발언의 길로 몰고 간, 치명적인 것들이 곧 그를 찾아온다. 우선은 반려자가 되는 여인(캐써린 조인스)과 그녀의 동생(제임스 조인스)이다. 제임스 조인스는 솔트에게 윌리엄 모리스, 헨리 조지 같은 사회주의 성향의 사상가들을 소개해준 이튼의 동료 교사로, 그가 점차 사회주의에 경도되는 건 제임스 조인스의 영향 탓이었다. 또 하나 치명적이었던 건 동물과 음식에 대한 그의 섬세한 태도였다. 결국 그는 채식주의자가 되는데, 무뇌아적인 육식 생활을 하던 다른 동료 교사들에 대한 염증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사회주의와 채식주의라는 고병원성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솔트는 엘리트 교육 공동체인 이튼 칼리지와 얼마간 불편한 동거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결단의 시기가 찾아온다. 1884년, 제임스 조인스가 사회주의 운동 가담이라는 이유로 체포되고 이튼에서 해고되자, 솔트도 이튼과의 작별을, 비타 누오바(새로운 삶)를 결정한 것이다.

 

헨리 솔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정착지로 삼은 곳은, 런던 남서부에 위치한 틸포드였다. 솔트 자신은 이 삶을 ‘이민emigration’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새 둥지를 틀고는, 식물을 기르며 ‘글로 말하는’ 삶을 시작한다. 사회 민주주의 재단의 저널 <Justice>의 기고가 시작되는 시점도 바로 이때다.

 

1886년 세상에 나오는 그의 첫 책은 <채식주의를 위한 호소>였는데, ‘나는 왜 이민을 결정하였나?’와 같은 자기선언문이었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영국 유학 시 솔트의 이 작품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이런 인연으로 훗날 간디와 솔트는 인생의 동무가 된다.

 

솔트를 ‘이민’으로 인도한 또 하나의 사상의 물줄기는 ‘단순한 삶’의 사상이었다. 삶에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손수 자연에서 가져오기. 무능력한 문명인에서 능력 있는 자연인으로 진화하기. 이러한 이상을 솔트에게 심어준 영감의 한 원천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로에 경도된 솔트는 소로 평전(<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1890))을 쓰기도 했다.

 

야생과 교감하는 능력을 계발하고자 했던, “하루를 좀 더 동물처럼 보내고” 싶어 했던 소로의 정신은,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고정된 거대한 격차를 제거하고, 모든 살아 있는 이들을 하나로 결속하는 “인간성에서 우러나오는 공통 유대”(<동물의 권리>)를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솔트의 정신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솔트는 소로의 야생 정신을 도시로 끄집어내, 동물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게 하는 철학적 원칙으로 만들어낸다. 바로 <동무의 권리>에서였다.

 

솔트가 펴낸 책은 약 40권이라고 전해지는데, 이 중 <동물의 권리>는 19세기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 나와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동물 윤리학을, 21세기 동물 윤리학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저작이다. 왜 우리는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왜 닭 한 마리도 물건처럼 다루어서는 안 되는가? <동물의 권리>에 따르면, 그것은 동물에게도 감각과 지각이, 감정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하게는 동물에게도 개별성, 성격(개성), 판단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그들에게 ‘각자의 삶’이 각기 따로 있다는 것을 뜻한다.

 

솔트가 보기에 동물에게는 또한 선택하고 행동할 자유, 즉 미래로 삶을 투기하며 살아갈 자유가 있는데, 이는 곧 자기 자신의 “자연적인 삶을, 즉, 개별적 성장이 허용되는 삶을 살아갈” 자유를 뜻한다. 이 말은 곧 그들 각자가 “삶의 주체”(톰 리건)라는 말과도 같다.

 

중요한 것은, 별반 크지 않은 차이를 큰 차이로 보는 ‘차이의 시선’을 거두고 “인간적 공감의 울타리” 안에 다른 종들을 포함하는 일이다. 솔트에 따르면, 고문자나 폭군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폭력의 피해자와 자신이 동족kinship이라는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즉, 최대한의 심리적 거리두기야말로, 악의 실행을 세계에 가능하게 하는 악의 근원자라는 말이다.

 

그러나 솔트는 동물에 대한 자비나 축산업 일체 폐기 따위를 논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정반대로 그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관한 도덕 원칙을 세움으로써 당대의 법과 현실에 변형을 일으키고자 했다. 예컨대, 그의 한 제안은, 모든 노동자에게 그래야 하듯 ‘가축 노동’을 하는 주체인 가축들에게도 향상된 노동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험프리 프리맷의 주장대로 가축의 “먹이, 휴식, 인자한 대우”, 이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지금 ‘이것이 나라냐’고 투덜대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보다는 ‘살처분의 현실’과 마주하며 다른 행동의 로드맵을 짜야 한다. 하지만 그 기획에는, 젊은 솔트의 번민과 노숙한 솔트의 원칙,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이 혁명의 첫 단추는 내 생각엔 “동물의 탈동물화”(캐써린 레미)를 멈추는 일이다. 어느 걸 그룹이 손에 들고 봉처럼 흔들어대는 호식이두마리치킨의 닭다리를, 어느 특정 장소에서 숨을 쉬며 살아 움직였던, 자기만의 눈과 부리, 벼슬, 날개, 다리, 발톱을 지니고 살았던 어느 특정 포유류의 몸, 그 생명의 이동과 동작을 가능하게 했던 몸의 일부로, ‘삶이 있었던 자리’로 보기 시작하는 일 말이다. (한겨레 21, 1145호에 게재)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w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