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된 소들을 묵상합니다

 

조반으로 소고기 미역국을 조금 먹었습니다. 고기는 거의 먹지 않지만, 미역국에 있길래 몇 점 먹었습니다. 조반 내내 찜찜한 느낌이 계속 머릿속을 맴 돈 까닭은, 살처분 소식 때문입니다. 지난 12월과 1월 AI 방역 차원에서 3천 만 마리가 넘는 닭, 오리들을 살처분하더니, 구제역 예방을 위해 날마다 소들을 살처분하고 매몰하고 있다는군요. (2017년 2월 10일 현재 전국 13개 농장 총 825마리의 소가 살처분됨)

 

이렇게 가슴이 짓눌린 듯한 느낌으로 보게 되는 뉴스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소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의 추억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때 외양간에서 홀로 살던 그 소는, 그리고 송아지도 낳았던 그 소는 가정 공동체의 멤버였습니다. 아침을 아침으로 느끼는 행사 중 하나는, 펄펄 김이 끓어오르는 여물을 소와 함께 바라보는 일이었지요. 저녁을 저녁으로 느끼는 한 가지 행사도 소 먹일 여물을 끓이는 행사였습니다. 이 여물을 끓이면, 제가 잘 방이 데워집니다. 그렇게 소의 행복과 저의 안락한 밤이 함께 왔던 것입니다.

 

같은 시간 때 각자의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살며, 집일을 도와주던 그 소는, 종은 다르지만 식구나 마찬가지인 그런 사이였습니다. 종은 다르지만, 한식구였던 소. 그 소, 그리고 그 소의 동료들, 그 동료들의 후세대들이 집단사육이라는 처지에 놓이더니, 이제는 집단살처분이라는 지옥에 있다니요.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말해보게 됩니다. 이 ‘죽임’의 사태 앞에서 마음이 불편해야 비로소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 그 말을 해보게 됩니다. 찜찜한 느낌, 불편한 감정, 그리고 조용한 분개심, 이러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가 인간인 것일까요? 이처럼 생명을 경시하고도, 그 경시를 방관하고도, 과연 우리가 무사할 수 있을까요? 이 사태 앞에서, 쉽게 대책을 말하거나 또는 외면하거나, 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인은 지금 시험대에 올라와 있습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국 바깥의 세계가, 소들이, 다른 가축들이, 다른 동물들이, 미래의 한국인들이, 그리고 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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