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사람들-존 버거

 

가장 나쁜 일이 있다면

사람들이 – 알든 모르든 –

자기 안에 감옥을 지니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강요받아 왔지요.

 

터키의 공산주의자이자 시인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가 쓴 시편 중 일부다. 우리 안의 감옥. 그러나, 누가 우리 안의 이 감옥을 강요한 것일까? 이 감옥이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이반 일리치(Ivan Illich)라면, 이 감옥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빈곤’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인류는 전례 없는 풍요의 시대를 살게 되었지만, 그만큼이나 다른 시대에는 없던 새로운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이반 일리치의 통찰이었다. 그는 이것을 간단히 ‘현대의 빈곤’이라고 불렀다.

 

무슨 말인가? 우선, 대다수가 시장에 플러그처럼 꽂혀 노동 중독, 상품 중독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일리치의 현대 진단이었다. 그가 보기에 이 대다수는 특정한 것만을 생산할 수 있을 뿐, 삶에 긴요한 대다수 물품에 관해선 무지한 채, 오직 전문가들이 기획하여 시장에 나온 상품을 통해서만 삶을 채울 수 있었다. 집이나 기계설비, 건강, 교통, 기상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고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일종의 유아적 무기력함이 현대인의 초상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경험도 동질화되었고, 세계에는 (전문가 외에는) 자율적 생산 능력을 상실한 타율적 삶의 주체들만 남게 되었다고 일리치는 지적한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는 날카로운 비평의 달인만은 아니었다. 그는 대안도 내놓았다. 사용가치를 지향하여 제작된 인공물을 ‘공생의 도구’라고 지칭하며, 그러한 인공물을 창조하는 기술, 즉 ‘공생의 기술’의 영역을 넓혀 삶의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또 시장에 오리엔트된 현대 사회의 질서를 재편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변혁 운동의 차원과는 별개로, 개별자가 자기의 방식으로 ‘전문가-시장 지배 체제’에 저항하며 자율인, 생산자의 삶을 열어가는 ‘독자 노선’도, 우리에게는 있다. 2017년 1월 2일, 우리 곁을 떠난 작가 존 버거(John Peter Berger, 1926~2017)는, 저 현대의 빈곤을 이러한 길로 극복한 빛나는 인생을 선보임으로써, 우리에게 이 길을 촉구하고, 또 우리를 이 길로 초대한다.

 

존 버거가 채택했던 ‘독자 노선’은 무엇이었던가? 존 버거가 정말로 저 현대의 신종 빈곤을 자기 식으로 극복했다면 그 극복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이 주제와 관련한 존 버거의 성취는 대략 세 가지 갈래로 정리해 말해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인간과 땅의 연결성을 회복한 것이다. 영국의 수도에서 태어나 자랐고, 영국군으로 복무하기도 했던 이 독특한 예술가는, 36세 되던 해(1962년) 고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처음 정착한 곳은 스위스의 제네바였지만 완전한 정착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유럽을 떠돌던 그는 1974년이 되어서야 정착하는데, 정착지는 스위스에 인접한 프랑스 동부, 알프스의 외딴 시골 마을(오트 사부와, 껭시에 있는 마을)이었다. 그러니까 20세기 후반부 문명의 결정적 특징인 농경문화의 죽음(에릭 홉스봄) 그 한복판에서, 존 버거는 주류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농경문화가 살아남은 곳으로 역주행해 갔던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마을에 필요한 일손이 되어주며 오래된 농경문화에, 농경풍경에 몸으로 동화되어간다. 그것은 그가 염원하던 삶이었다. 그는 젖어 들어갔다, 산야에, 넓은 초지에, 과수에, 소와 양들에, 소외가 없는 생산자들, 즉 산골 농부들의 얼굴과 손, 이야기에, 고요 속의 육체노동에, 오직 육체노동만이 보장하는 휴식의 깊이와 의미에……

 

또 하나, 존 버거의 남다른 점은 농투성이로, 사회비평가로 활동하면서도 예술가의 붓과 펜을 일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존 버거는 예술비평가,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시인이기도 했다!) 사실 그의 첫 사회 활동은 미술 교사 그리고 화가로서의 활동이었다. 물론 그는 직업 화가로서의 삶을 일찌감치 포기하지만, 그림 그리기라는 ‘인간 종의 활동’마저 포기했던 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말년에 농부이면서 동시에 화가인 사람만이 쓰고 그릴 수 있는 한 권의 경이로운 책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벤투의 스케치북>(2011)) 이를테면 이 책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그가 그린 자두는, 사흘 후면 따야 했기에 그 전에 그려야 했던 자두인 것이다.

 

프랑스의 고즈넉한 농경 공동체 속에 삶의 뿌리를 내리자, 그곳의 향기와 고적함이 글쓰기에 새로운 연료를 공급했다. 도시에서 쓰던 소설과는 다른 결의 소설이, 소설이라기보다는 이야기가, 스토리텔링이 그를 찾아왔다. 그의 말대로 그는 지역 농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국경에서 물건을 전달해주는 사람처럼” (<존 버거의 사계>) 그들의 이야기를 외부에 전했다. 농사와 동물의 세계를 천착한 삼부작 <Pig Earth>(1979), <Once in Europa> (1987), <Lilac and Flag> (1990)도 (이 세 권은 나중에 <Into Their Labour>(<그들의 노동과 함께 하였느니라>)라는 제목의 낱권에 묶여 출간된다.) 소를 키우며 홀로 살던 한 노인의 삶을 다룬 <말하기의 다른 방법>(1982)도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왔다.

 

마지막으로, 존 버거는 동족(민족)이라는 감옥, 기득권 수호자(백인 지식인층)라는 감옥을 빠져나와 세계 여러 문화권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이즈 환자, 노숙자들, 이주 노동자들, 팔레스타인의 양민과 투사들, 제국주의의 희생자들, 테러리스트로 변신해야만 했던 이들, 테러리즘의 무고한 희생자들….), 노동 계급과 연대하는 인간의 길을 걸었다. 루쉰이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을 선택했던 것처럼, 화가의 길을 걷던 그는 어느 순간 붓을 포기하고 펜을 선택하게 된다. 일생을 페인팅으로 보내기에는 “다급한 정치적 사안들이 너무나 많았던” (<뉴 스테이츠먼>과의 한 인터뷰 중)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발언하는 삶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시, 르뽀, 비평 등 팔방미인으로서의 재능을 여실히 발휘한 역작 <제 7의 인간>(1975)에서는 고향인 소농 공동체를 떠나 유럽의 경제 도시로 모여들었던 주변부 국가 노동자들의 성공과 실패를 채록했고,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2007)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고통 받는 이들, 테러와의 전쟁의 희생자들인 이슬람 세계 민중들,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살과 계획과 꿈이 있는 존엄한 삶의 주체들로 형상화해냈다. 그러나 이것은 존 버거로서는, 작품의 성취이기 이전에 삶의 개진이었다.

 

존 버거가 태어난 곳은 제국주의의 수도였던 런던이었다. 어머니 미리암은 노동 계급 출신이었지만, 아버지 스탠리 버거는 중산층 계급이어서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클 수 있었다. 센트럴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는데, 학업 도중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고 만다. 그러나 노동계급 출신 병사들과 만나며 그들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이곳, 중산층의 삶의 울타리 밖에서였다. 일생을 이어질 그의 정치관, 세계관이 형성된 역사적 현장이었다.

 

종전 후, 화가의 꿈을 포기 못한 청년은 첼시 미술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마무리한다. 졸업 후에는 세인트 매리 교사훈련 칼리지에서 강사로, 또 런던의 화랑에 전시회를 여는 직업 화가로 살아가지만, 무언가 뜨거운 것이 그의 영혼, 그 심연에서 용암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52년(26세)이었다. 좌파 주간지 <뉴 스테이츠먼>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글로 싸우는 삶’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뉴 스테이츠먼>, <트리뷴> 등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된 그의 초기작들은 예술비평이었다. 하지만 그의 ‘본색’이 곧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다른 방식으로 보기>(1972)에서도 시각 행위에 깃든 그러나 은폐되어 있는 사회정치적 의미의 맥락을 들추어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비평가로 입문한 지 20년이 되는 1972년, 조국마저 바꾸어버린 이 이단아스러운 글쟁이는 BBC 방송에 출현하며 돌연 스타덤에 오른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타이틀의 (BBC의) 4부작 TV 시리즈에 출현하며 섹시한 지식인 스타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게 된 것이다. (이 시리즈가 같은 해 같은 제목의 책으로 정리되어 나온다.) 같은 해 소설 <G>의 부커 상 수상은, 세계적 스타 비평가의 입지 구축에 쐐기를 박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어느 운 좋은 이 지식인 앞에는 탄탄대로만이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 화가의 길을 접게 했고 고국을 등지게 했던, 그의 내면 안의 뜨거운 무언가는 결국 그의 육신을 프랑스의 알프스 자락으로 향하게 한다. 그 뜨거운 무언가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이를테면 ‘희망’ 같은 건 아니었다. 짐작컨대 그것은 그러한 용어는 도저히 지시할 수 없는, 보다 다급한 것, 그것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타율적인 삶을 강요하는 올가미로부터, 이반 일리치가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새로운 빈곤 상태로 우리를 안내하는 힘으로부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보호해내는 일, 즉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일과 관련된 것이었다. (<한겨레 2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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