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과 철학(2)-틱낫한의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

 

요즘은 ‘식食의 시대’라 할 수 있을 만큼, 음식문화, 음식, 미식에 대한 관심도가 지대하죠.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고 전 세계적 흐름이 그러해서, 이것을 영어권에서는 ‘푸디즘Foodism’이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지금은 푸디즘의 시대인 거죠. 스타 쉐프의 등장, 이른바 ‘먹방’의 인기, 레시피 관련 웹과 앱의 대중화는, 잘 아시다시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여러 매체들에서 만나는 푸드 콘텐츠 가운데 99%는 제가 ‘근시안적 음식관’이라고 부르는 관점에 갇힌 콘텐츠들이에요. 컴컴한 동굴을 탐사할 때 탐조등에 어떤 동물 그림이 보였다면, 전체 형상을 찾아보려는 게 인간의 당연한 호기심이죠. 그런데 그 동물의 얼굴만 찾아내고는, 거기에 만족하고 만한다면 어떨까요? 제가 보기엔, 오늘날 푸디즘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태에 있어요.

음식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볼게요. 여기, 버섯전골이라는 요리가 있습니다. 두부, 쑥갓, 버섯, 배추, 대파, 고추 등이 들어가는 요리죠. 저도 즐기는 요리입니다. 미디어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버섯전골 푸드 콘텐츠는 다음 사항에만 우리의 시선을 좁혀 놓습니다. 1) 버섯전골 요리법 2) 어느 집이 이 요리를 잘 하는가? 그곳만의 맛은 무엇인가? 3) 버섯전골을 먹으면 내 몸에 무엇이 좋은가? 즉, 이 세 가지 이상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얼 더 생각하란 말인가요? 한국에서도 유명한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은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을 이야기하시는 분인데, 이분의 답변은 이러합니다. 사과를 먹을 때, 사과를 먹고 있음을 충분히 자각하고, 오직 사과만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삶의 ‘중대 사안들’ 말고 오로지 사과라는 물질에만 집중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씹을 때 생각의 골을 파서, 사과가 있던 자리로 생각을 옮겨보라는 것입니다. 어느 사과밭에 있는 사과나무 한 그루, 그 나무를 손수 길렀던 농부, 나무의 뿌리가 살던 흙, 그리고 토양미생물, 뿌리에 와 닿은 빗물과 지하수, 햇빛(태양광자)과 바람(광합성에 긴요한 탄소), 수분매개자인 벌까지……버섯전골의 두부, 쑥갓, 버섯, 배추, 대파, 고추 등도 모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가능해요.

실제로 해보면, 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단 몇 초밖에 안 걸려요. 그런데 이 몇 초를 만들어내기가 그토록 어렵습니다. 습관이라는 악마 때문이지요.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의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는 동아시아 선승들이 이야기해온 선禪(Zen)에 다름 아닙니다. Mind라는 것은 생각한다, 염두에 둔다, 집중한다는 것이죠. 식食 행위의 대상이 되는 물질, 그리고 식의 주체인 나 자신에 생각이 온통 쏠려서, 다른 생각이 사라지는 식사. 그게 바로 마인드풀 이팅입니다. 이런 식으로 물질을 음미하면, 그 물질을 가능하게 했던 만유생명과 내가 진정한 교감 상태에 있게 된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음미하며, 천천히, 생태적 상상력의 발동과 함께 먹게 되면, 낱낱의 씹기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이 솟아나, 저절로 소식小食이 된다고 하네요.

또한 몸을 모시는 마음새로 먹는 것이 마인드풀 이팅입니다. 즉, 나를 내 몸의 주인이 아니라 내 몸의 관리자로 여기며, 내 몸을 “선물이자 책임”으로 여기며,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틱낙한 스님의 식탁은 곧 명상의 자리입니다. 생명을, 생명 인연으로 가능한 나의 생명을, 나 자신을 명상하는 소중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식탁은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성·영성에 양분을 주는 자리라고 합니다. 식사는 명상의 절대적 기회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스님의 입장은 꽤나 급진적이어서,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식탁만이 아니라 부엌도 명상을 실천하는 곳으로 만들라고 권하더군요.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요리할 때도, 호흡에 집중하며, 하고 있는 일에만 몰두하라고요. ‘부엌 제단’을 만들어보라는 권유는 사뭇 신선해요. 만들기는 어렵지 않아요. 향이나 꽃병, 돌, 성상, 조상의 사진 등 마음을 경건하게 하는 작은 사물을 작은 선반 위에 놓으면 끝이니까요. 이 앞에 서서 호흡을 한다거나 향을 피우며 부엌일을 시작해보라는 주문입니다. 그리고 요리와 식사에 충분히 시간을 쏟으라고, 그러기 위해 스케쥴을 잘 조절하라고 스님은 우리에게 권유합니다.

이런 말들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저는 어렵게 들립니다.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실천하기가 어려워서이지요. 그래서 스님은 부단히 되풀이하여 실천[연습]해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연습은, 우리 생명으로서는, 단 한 번뿐인 실전實戰입니다.

스님의 음식음미론에 두 가지 촌평을 덧붙입니다. 첫째, 틱낫한 스님의 음식음미론은 주로 서구에서 인기가 있지만, 중국에서 나온 어느 한자어는 그 핵심을 짚어줍니다. ‘음수사원飮水思原’이라는 말입니다. 물을 마실 때, 물이 어디에서 온 물인지 생각해보라는 말이죠. 물론 우리는 ‘물’을 ‘밥’으로도 바꾸어 생각해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음수사원이 제대로 되려면 음수지원飮水智原이 먼저 되어야 해요. 즉 먹거리가 발생되는 원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농생태학·농생물학 지식이 기초가 되어야 음수사원이 쉽게, 또 제대로 됩니다. 그런 점에서 마인드풀 이팅의 실천자에게, 또 먹어야 사는 운명인 우리, 즉 식자食者인 우리 모두에게 농생태학·농생물학 공부는 필수입니다. 사람이 아프면 (자기) 병을 공부하는 의학도가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말로 잘 먹으려면 농생태학·농생물학을 공부해야 해요.

둘째, 틱낫한 스님의 음식음미론은 훌륭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앞서 말했던 ‘근시안적 음식관’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은 아닙니다. 마인드풀 이팅이 되려면 식생食生(식생명) 자체가 건강한 농생태계에서 나고 자라고 또 죽어서 식탁에 와 있어야 하는데, 잘 아시다시피 작금의 국내외 농생태계, 나아가 전지구의 생태계는 화학농, 유전자변형작물 농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지요.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의 40%가 화학농에서 나옵니다.) GM 콩으로 만든 콩국수를 먹고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팜 오일을 입에 넣는 사람에게, 틱낫한 스님 식의 음미가, 나와 세계를 동시에 살리는 치유의 식사, 영적 식사가 과연 가능할까요? “잘 먹는 것이 곧 아트”라는 스님의 이야기는 옳지만, 그 아트가 실현되어야 하는 곳은 식탁만이 아니라 농생태계이자 그 생태계에 관여하여 식탁에까지 식물食物을 옮겨놓는 푸드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제 요지는 아주 간단합니다. 식자食者인 우리에게 지금, 한 자루의 보검이 아니라 두 자루의 보검이 필요하다는 것. 음미하는 삶 그리고 투쟁하는 삶, 이 두 가지 삶 말이에요. 그리고 이 두 삶을 의미 있게 하고, 두 삶으로 우리를 이끄는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알아가는, 알아내는 삶입니다. 무지의 상태에서 참된 음식 음미는 불가능합니다. (즉, 음수지원이 음수사원을 완성합니다.) 인체와 지구 자연 모두에 해를 가하는 오늘날의 음식을 안다면, 저항하고 항거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여건에서는, 알고 저항을 해야 비로소 마인드풀 이팅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함께사는 길> 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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