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기] 조정권-모든 상은 허상이다

 

 

우리 일행 중 이탈리아 신부님 한 분이

서양식으로 절하다 말고

안으로 들어가 옷 벗어 놓고 알몸으로

석굴암 안에서 두 손 모으고 계신

그분의 두 손과 손등을 만져 보고 있었습니다.

연꽃 핀 돌방석을 만져 보고 무릎과 어깨와 등도 하염없이 만져 보고

손을 놓고 계셨습니다.

왜 만졌냐고 물었더니

이 손목을 자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만진 건지

만져 드린 건지 물어보았습니다.

손을 만져 주고 계셨다고 하더군요.

왜 만지러 갔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모든 종교심을 초월해 있는 산 인간이기에

살아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고

피부를 만져 보고 싶도록 온후한

체온을

느껴 보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지그시 감은 눈만은 쳐다볼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보다 먼저 그분이 나를 쳐다보고 있으시기에.

 

-조정권, <눈매> 전문 <<고요로의 초대>>(민음사) 수록

 

 

*

 

우리 집에는 부처 조각상彫刻像이 하나 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돌로 만든, 태국인가 하는 나라의 누군가가 만든 부처상이다. 이 상이 있던 자리는 서재였지만, 지금은 부엌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신성한 곳은, 쑥갓, 무, 호박, 버섯, 멸치, 새우, 가자미 등 지구의 갖가지 생물들이 모이는 자리인 부엌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야말로 부처상이 있을 자리라고 이즈음 나는 믿고 있다. 부엌이 신성하고 음식이 신성할 때, 그때야 비로소 내 삶도 신성하고 존엄하다. 그 역은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이 자그마한 상은 내 허리를 곧추 세우고 해주고 내 마음을 건실하게 해주는, 참으로 고마운 상이다. 이 상을 보며 나는 내 안의 빠름과 거침을, 생명에 대한 불경심을 칼로 잘라내는 연습을 하며 산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내 마음자리의 심지가 굳건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희극임이 틀림없다. 굳건하다면, 상像도 필요 없다.

 

저, 석굴암의 여래 조각상의 감은 눈을 이탈리아 신부님이 감히 쳐다보지 못한 이유, 그 분의 감은 눈이 그 신부님을 먼저 쳐다보고 있었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모든 부처상은 자기가 염원하는 자기의 상이며, 그러하기에 이미 우리의 마음자리 그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있다. 나를 보는 그는, 실은 나를 보는 나인 것이다. 삶은 단 한번 뿐이며, 정신을 차리기만 한다면 그 자리가 곧 석굴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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