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옮긴이가 쓴 리뷰

 

현대 백화점에 다녀왔다. 식품관이라는 곳도 지나치게 되었는데, 과자 가게 앞을 지나다 궁금해서 살펴보니 “계란: 국내산”이라고 적혀 있다. 이것이 표기의 전부란 말인가? 저 말은, 그 과자에 들어간 계란이 밀집 사육시설에서 힘들게 사는, 생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계란 제조기에 가까운 어느 물질이 성장을 촉진하는 합성 사료를 주입당한 뒤 제조해낸 계란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비자는 이런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식(식재료, 요리, 레시피, 식당 등)의 사안을 농(농산물, 농업, 농민, 농지 등)의 사안과 분리해서 사고하기 때문이고, 식과 농 사이에 걸쳐져 있는 커튼을 잘 열어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의 물리학자이자 유기 농업 운동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가 쓴 이 책은 먹을거리를 전체론적 접근법(holistic approach)으로 바라보며, ‘식농 분리’라는 현대인의 사고오류를 치료한다. 아울러 건강과 농업 사이 잘 보이지 않는 점선도 실선으로 그어 연결해준다. 저자의 논의 지평은 어느 국민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여서, 독자를 세계 이해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의 기본 음조는 ‘정리’라 할 것이다. 제목 자체가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인데, 그건 저자가 이 책을 일종의 교과서 수준으로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들뢰즈와 가타리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슈뢰딩거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썼듯, 반다나 시바 역시 일생의 화두를 바로 이 책에서 정리했다.

 

과연 무엇이 이 세계의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이 물음은 이중 나선 구조의 답변을 요한다. 식량의 생산과 이동에는 두 갈래 질서의 흐름, 즉 물리적 질서와 사회적 질서라는 두 흐름이 갈마 들며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이 이중 나선의 구조를 소상히 밝혀낸다.

 

우선, 물리적 질서. 모든 음식물은 최초의 음식물에서 시작되는데, 그걸 만들어내는 건 대체로 토양에 뿌리를 둔 식물이다. 그리고 그 식물 중 다수는 자신의 삶을 위해 토양만이 아니라 벌과 나비에도 의존한다. 토양의 세계든, 벌과 나비의 세계든, 생물 다양성이 그 세계를 건강하게 하고 그리하여 농작물도 건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생물 다양성 역시 물리적 질서의 긴요한 부분일 것이다. 한마디로, 농생태계의 생물 질서가 종 다양성을 유지한 채 안정될 때, 식량의 생산도 순조롭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눈을 들어 오늘날의 농지를 살펴보면, 우리는 이런 물리적 상식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생뚱맞은 현실’을 보게 된다. 생물다양성, 토양의 공생계, 화분 매개자를 중시하기는커녕 되레 적대시하는 ‘전쟁 형의 농업’과 그와 연관된 식품 산업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저자가 문제시하는 건 종자, 사료, 식음료 가공, 유통 부문의 글로벌 식품 대기업들이 주축이 되고 ‘착취의 법칙’에 따라 가동되는, 산업화되고 세계화된 농업·푸드 시스템이다. 공언과는 다르게 기아를 해결하기는커녕 양산하고 있고, 현대인의 식 질병의 주요 원인인 데다가 세계 천연 자원의 75%를 사용하면서도 식량 생산량에선 겨우 30%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식량과 농업에 관한 권력에서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세계의 식량 불안, 농지 감소, 지구생태계 교란 등 악화일로의 현 상황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비록 대기업들에게 종속되어 있지만 생물 질서와 생물 다양성을 살피는 농법에 관한 지식(농생태학)을 가장 잘 보유하고 있고, 종자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지역 살림살이에 기여하고, 세계 식량 생산량의 70%를 책임지고 있는 세계 각지의 소농들, 특히 여성 농민들에게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적 질서를 다룰 때 주된 서술 기조는 당위의 역설이 되는 셈인데, 이 책의 두 번째 음조는 그리하여 ‘비판’이 된다.

 

결미에서 저자는 로드맵을 제시한다. 세계 소농들에게 권력을 이동시키고 푸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9가지 로드맵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지식 패러다임의 전환일 것이다. 자연과 생명체를 조작 가능한 대상이나 기계, 죽은 물질, 서로 분리 가능한 물질, 분자 같은 최소 단위로 환원 가능한 물질로 보는 사고방식이 현 산업형 농업의 근간에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이런 사고방식이 특정한 식량 경제관으로 이어져 현재의 식량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농 문제에 관하여 가장 시급한 일은, 자연과 생명에 관한 관점을 재정립하는 일일 것이다. (세계관, 생명관, 과학관의 문제를 다루는 1장이 그래서 이 책의 뇌-척추가 된다.) 그러나 그건 대단히 어려운 관점은 아니다. 땅과 씨앗, 식물과 동물의 지능을 인정하고 이들과 더불어 식량 생산을 도모해야 마땅하다는 농생태학적 과학의 관점일 뿐이다.

 

흠결도 있는 책이다. 푸드 생산이 이루어지는 물리적 질서의 핵심인 광합성에 대한 언급이 누락되어 있다. 또 하나. 세계 식량 생산의 70%를 담당한다는 소농들 모두가 ‘착취의 법칙’과 대별되는 ‘반환의 법칙’을 따르고 있는지, 적이 의문이다. 현재 세계 농지 가운데 유기농업 농지는 겨우 1%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소농들 자신이 깨어나 유기농업, 자연농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제에 대한 논의가 이 책에는 결락되어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이만한 거시적 시각의 정리도 지금껏 우리에게는 없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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